무언가를 해야 했다. 밀양 송전탑 소식을 들을 때마다 덜컥 내려앉는 마음을 붙잡기 위해, 잔인한 국가폭력과의 싸움에 대표선수로 내몰린 밀양 주민들과 함께 살기 위해, 무언가를 해야 했다. 길을 몰라 망설이고 있을 때, 잘 전해지지 않는 밀양의 목소리를 담아보자는 이야기들이 오고갔다. 국가폭력의 희생양 혹은 전사로 이분화 된 시선 밑에 감춰진 밀양 주민들의 고유하고도 다양한 삶과 일상을 기록해보자는 ‘밀양 구술프로젝트’는 함께 살아내기 위해 무언가 해야 했던 절절한 마음들이 모여 2013년 12월에 시작됐다.
서울, 울산, 광주, 충북 등지에서 모여든 인권활동가, 기록노동자, 여성학자 등이 겨울 내 밀양으로 인터뷰를 떠났다. 구술기록을 아카이브로 남겼으면 좋겠다는 요청에 미디어 활동가들이 아무 조건 없이 시간과 열정을 보탰다. 오백만원이 훌쩍 넘었던 교통비와 진행비는 작은 보탬이라도 되면 좋겠다며 사람들이 소셜펀치, 개인후원, 모금 등을 통해 십시일반 모아준 돈을 통해 충당됐다. 그리고 4월 말, 이 간절한 마음이 모여 <밀양을 살다: 밀양이 전하는 열다섯 편의 아리랑>(오월의 봄)이 출간됐다.
책의 원고가 하나둘 쌓여갈 동안 영화 <밀양, 반가운 손님>도 제작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아카이브 기록을 돕기 위해 결합했던 미디어 활동가들이 밀양 주민들의 일상을 독자적인 영상에 담기 시작한 것. 이들이 구술프로젝트팀과 만난 밀양은 언론보도를 통해, 희망버스를 통해 접했던 투쟁의 공간으로서의 밀양이 아니었다. 그들이 만난 할매들은 박복한 팔자에 순응하기보단 척박한 농토를 일궈왔던 농부였고, 때로는 아내였고, 엄마였고, 며느리였지만 이에 그치지 않고 고유한 세계와 삶을 일궈왔던 여성이었다.
하여 6편의 옴니버스로 구성된 영상에는 한국 현대사와 함께 흘러온 삶들과 결코 하나의 이야기로 갈음될 수 없는 밀양송전탑 반대 투쟁의 이유들이 담겼다. 살아내기조차 벅찼던 시절, 차근차근 욕보고 살아온 일상과 소위 재산권이라 왜곡되는 땅 한 마지기가 어떻게 불려져 왔는지를 기록하며, 국책사업이란 미명 하에 진행되는 송전탑 공사가 어떻게 그네들의 일상을 파괴하는지를 담아낸다. 하기에 구덩이를 파고, 목을 매달 밧줄을 늘어뜨리고, 제 몸뚱이를 죽음으로 한발자국 밀어 넣는 건 밀양 주민들이 유별나서가 아니다. 그만큼 심각한 국가폭력이 자행되고 있음에 대한 고발이며, 망각과 부인이 만연화된 우리 사회에 보내는 타전이다.
<밀양을 살다>와 <밀양, 반가운 손님>은 말한다. 당신의 삶처럼 밀양 주민들의 삶도 계속되어야하기에 함께 밀양을 살아내자고. 이제 망각이 아닌 기억으로, 침묵이 아닌 마주함으로 그리고 함께 걸음으로 그 절박한 호소에 응답해야하지 않을까? 더 늦기 전에 말이다.
유해정 (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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