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해설: 문 밖에서 잇는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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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설이 존재하는 이유는 시설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그 시설에 거주인의 수만큼 세금이 투여되고, 후원금이 도착하고, 자원봉사자가 파견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탈시설 정책은 시설 밖으로 나오고 싶은 거주인에게 훈련과 자립의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그 자리를 다른 사람이 채우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시설에 가도록 만드는 인프라를 제거함으로써 탈시설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장애여성공감은 [시설사회 – 시설화된 장소, 저항하는 몸들]’이라는 책을 통해서 한국사회의 시설화가 근대 국가의 출현과 함께했으며, 국가의 경계를 세우고 누가 국민인가를 지정하는 과정에서 국가의 허락 없이 국경을 넘은 사람, 국가가 허용하는 것을 넘어선 사상을 가지고 다른 질서를 만들기 위해 실천한 사람, 다른 인종과 섞인 ‘혼혈’의 사람, 가정에서 내쫓기거나 부양받지 못하는 사람 등을 시설에 수용해왔다는 점을 밝혀내었다.

하지만 시설에 수용되었던 사람들이 탈출하고,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며 타인과 중요한 관계를 맺고, 이들이 함께 ‘사회’에서 살 수 있도록 지원하는 법과 제도를 만들어내면서 시설수용이 운명이 아니라 국가의 의지와 선택이었다는 점을 방증했다. 그 의지와 선택을 어떻게 다르게 만들어나갈 것인가는 무엇이 기본적인 권리인지, 누가 지금 그 권리에서 제한되고 있는지를 정확하게 지목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시설이 없다는 전제하에서 모두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것을 권리로 만드는 것, 다른 선택지가 없는 상황에서 시설에 가도록 만드는 것이 강제라고 말하는 것에 용기를 내야 한다. 제주에 예멘에서 온 난민이 도착했을 때 “너네 집에 들일 것이 아니면 가만히 있으라”는 말이 많았다. 시설 문제도 마찬가지다. 당장 가족 중에 환자가 생겼을 때 내 생활을 포기해야 할까 두려워서 침묵하도록 만들어서는 안 된다. 그 두려움을 이겨내고 우리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요구해야 한다. 그리고 그 돌봄 책임을 개인에게 독박 씌우고, 가족 내 여성에게 노동을 전가하며, 돌봄 받는 사람과 돌봄을 제공하는 사람을 고정시키고, 서로를 적대하게 하며 모두의 삶을 위태롭게 만든 국가와 사회에 책임을 요구해야 한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2018년 4월 20일 다음을 선언했다. ‘2028년 4월 20일까지 모든 장애인거주시설은 폐쇄한다. 모든 장애인의 권리는 지역사회에서의 완전한 통합과 참여에서 나온다.’ -장애인거주시설폐쇄법 제1조-

어떻게 하면 시설폐쇄가 가능해질까? 시설을 유지함으로써 구체적인 이득을 얻는 세력뿐만 아니라 누군가가 시설에 있기에 안심하고, 두려워서 같이 살기를 포기하는 ‘우리’ 모두가 시설을 유지하게 하는 힘이다. 이를 바꾸기 위해서는 모두가 용기를 내어야 하지만, 그 용기의 출처는 나뿐만 아니라 우리가, 그리고 사회가 달라질 수 있을 때 정말 변화가 가능하다는 믿음일 것이다. 그래서 사회를 조직하는 방식, 사람이 관계 맺는 방식, 세계를 유지하는 방식에 대한 전면적인 변화가 함께 일어나야 한다. 그렇다면 시설사회에 대한 자각과 그것에 도전하겠다는 의지는 언제, 어디에서 시작될까? 가장 강력한 것은 바로 지금 시설에 거주하고 있는 이들의 목소리일 것이다. <문밖에서 잇는 날들>에서, 정신장애인 시설에서 의사로 일하던 이가 “거주인이 이곳을 감옥이라고 정의한다면, 나는 간수가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것을 인정하고, 더이상 간수로 살지 않기 위해서 감금된 사람과 함께 해방의 길을 찾아 나설 수 있었다. 서로를 의존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기에 내 삶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서 너와 새로운 관계를 맺겠다는 용기, 그것이 시설사회를 바꾸는 동력이 되지 않을까.

 

타리(장애여성공감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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