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해설: <멜팅 아이스크림>

인권해설

인권활동을 하다보면, 카메라를 들고 현장을 남기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카메라의 시선이 향한 곳을 보며 때론 저건 왜 찍는 걸까? 라는 물음이 생기기도 한다. 기나긴 집회의 연설과 가만히 앉아서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 덩그러니 놓인 가방, 때론이 공간과 무관해 보이는 곳에 카메라 렌즈가 향하는 것 같기도 하다. 메모를 남기거나, 현장의 소란스러움이 끝나길 기다리다 말을 거는 사람도 본다.

우리는 이러한 ‘인권’의 기억을 담은 사진과 말을 인권 기록이라 부른다. 현장과 무관해 보였던 카메라의 렌즈에는 그곳에서 존재하는 존엄의 다양한 모습이 담겨있다. 영화나 책과 같은 기록, 성명서나 자료집처럼 인권운동이 일상적으로 만들어온 기록에도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모습이 남겨져 있다.

인권기록을 정리하기 시작하며 기록 속에 담겨진 것들을 접한다. 인권운동에서 주장하는 것들, 지금 이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 폭력과 차별이 만들어지는 구조와 그 속에서 겪게 되는 사람들의 아픔, 그리고 서로가 서로를 받치는 마음이 그것이다.

하지만 인권의 현장을 담아온 기록이 모두 ‘인권적’이진 않다. 기록은 그 당시의 현장만이 아닌, 그때의 운동이 가진 한계를 보여주기도 한다. 오래된 기록에는 인권 침해의 현장이 적나라하게 담겨져 있어 피해생존자가 이 기록을 접했을 때 다시 그 고통의 시간으로 돌아가게 한다. 때론 피해자로서의 모습만을 강조하기도 하고 강

인한 투사로서의 모습만을 드러내기도 한다. 인권운동이 무엇을 어떻게 ‘재연’할 것인지, 인간의 존엄을 상기시키기 위해 자칫 스스로 인간의 존엄을 무너트리지 않는지 지금도 고민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렇다고 과거의 기록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은 현장을 잘 전달하는 소식통 수준에서 시작을 했던 거죠. 처음부터 끝까지 기록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야겠다. 나라도 하자.”는 말처럼 기록을 남긴 사람들이 있었기에 그때의 현장이, 잊힌 기억이 아닌 지금의 기억이 된다. “계급의 위대, 전형성이라는 말을 되게 많이 썼어요. 전형성을 찾아야 한다. 예를 들어 가지고 어떤 노동자의 얼굴을 찍었을 때 이것이 정말 노동자 계급의 얼굴을 대표할 수 있는 그런 사진이냐”는 말은 당시 운동이 보여주려 했던 사회 모순과 싸우는 사람들의 모습이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그 얼굴을 담은 세계가 가진 한계점을 생각하게 한다.

영화에 담긴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투쟁하는 사람들의 결기에 압도당하면서도 그들의 삶에 투쟁만이 있지 않기에 그 이외의 삶에 대해 궁금해진다. 한 사람의 세계는 여러 면으로 이루어졌기에 여러 개의 기록은 또 다른 면을 채워낸다. 우리가 인권기록을 남기고 보존하는 건, 다양한 세계와 존엄한 삶의 방식들을 채워내기 위함이다.

기록은 남기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다양한 기록이 모이고 그 기록을 함께 나눈다면 기록은 사회적 기억이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리의 존엄이 무엇인지, 공명하는 인권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한다. 우리 모두 각자의 존엄에 대한 기록을 남기자. 그렇게 모인 기록을 서로 나누며, 살아가는 힘을 연결하자. 인권기록을 통해 서로 말을 걸며 어깨에 기대어 보자.

훈창(인권아카이브)


인권아카이브 http://hrarchive.or.kr
인권아카이브는 인권기록을 정리하고 보존하기 위해 2016년부터 활동하고 있습니다. 인권아카이브 웹페이지에는 오랜 인권기록부터 현재 만들어지고 있는 기록까지 보존하고 있으며, 누구나 손쉽게 자료를 볼 수 있도록 원문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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