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해설: 망각과 기억2: 돌아 봄

인권해설

한국사회에서 노란 리본을 달고 다니는 일은 ‘4·16을 잊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지, 죽은 이들의 희생에 어떤 의미가 부여되어야 하는지 명백히 밝혀지기 전까지 4·16을 기억하려는 사람들은 노란 리본을 다는 행위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노란 리본에는 죽은 이들을 애도할 수 없는 산 자들의 고통이 담겨 있다. 사람들이 죽어갈 때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부끄러움이, 희생을 헛되게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는 죄책감이, 또 다시 잊고 살 수도 있다는 망각에의 두려움이 산 자들로 하여금 노란 리본을 상장(喪章)처럼 달고 다니게 하는 것일 테다. 노란 리본은 죽은 이들과 산 자들을 연결하는 끈이다.

하지만, 죽은 이들을 가슴에 품고 사는 것이 산 자에게는 물론 죽은 이에게도 바람직한 일만은 아니다. 죽은 이들에 대한 과도한 집착과 의존은 산 자들과 죽은 이들 모두를 곤경에 빠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산 자들이 와해되지 않고, 죽은 이들을 배제하지 않으면서 함께 살아남을 수 있는 관계 맺기는 어떻게 가능할까.

프랑스의 정치철학자 자크 데리다는 죽은 이들과 대화하는 법을 배움으로써만 ‘함께 살기’를 모색할 수 있다고 조언한 바 있다. 죽은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 목소리를 번역하여 전달하려는 노력이 애도의 가능성을 높인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4·16을 잊지 않겠다는 것은 단순히 사건을 기억한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어떤 잘못으로 삶을 빼앗겼는지 말할 수 없게 된 희생자들에게 ‘말’을 되돌려주는 실천이 되어야 한다. 희생자들의 말이 우리 사회에 들리도록 해야만 하는 것이다.

<망각과 기억2: 돌아봄>은 4·16을 기억하려는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 그들은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면서도 끊임없이 죽은 이들의 목소리를 전달하려고 애쓴다는 점에서 희생자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희생자들과 관계를 맺고 산다는 것이 결코 평화롭지만은 않다는 것은 산 자들의 고통에 찬 증언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그것은 산 자들을 살아가게도 만들지만, 때로는 삶을 송두리째 무너지게도 한다. 자신의 삶이 무너질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그들이 죽은 이들의 목소리를 전달하려고 하는 것은 죽은 이들을 위한 것이 결국 산 자들을 위한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희생자들을 기억하는 것이 산 자들의 세계를 지키는 힘이 된다.

하지만, 희생자들을 기억하는 일에는 반드시 사회적 비용이 뒤따른다. <기억의 손길> 편은 “416안전공원”의 건립을 둘러싼 안산 지역의 사회갈등을 보여주고 있다. 재산권을 지키려는 사람들과 기억의 공간을 만들려는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상충할 때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은 쉽지 않다. 이런 경우는 기억의 공간을 만드는 건립 주체의 분명한 철학과 확고한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4·16을 기억하는 공간은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사회 전체, 피해지역 공동체의 치유와 회복, 그리고 미래의 후손들을 위한 것이다. 사회적 고통은 사회를 바꾸는 긍정적 힘으로 작용할 수 있지만, 여기에는 죽은 이들의 목소리가 고려되어야만 한다는 전제가 있다. 4·16을 기억한다는 것은 죽은 이들을 배제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죽은 이들과 산 이들이 함께 살 수 있는 방법을 끊임없이 모색해야만 하는 지난한 협상의 과정이다.

사람들의 슬픔과 원한은 그대로 방치하면 재앙을 가져오지만, 그 힘을 다스리면 산 자를 보호하는 힘으로 바뀐다. 그런 맥락에서 생각할 때 사자에 대한 생생한 기억이 다른 형태로 만들어진다면, 사자와 산 자의 마음을 함께 위로하면서 사자를 항구적으로 모실 수 있는 공간이 생길 것이다.

_이소마에 준이치, 『죽은 자들의 웅성임』 중에서

정원옥 (문화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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