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해설: 마이 플레이스

인권해설

캐나다에서 프로그래머였던 두 사람은 결혼하여 두 아이를 낳았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컸을 때 엄마는 자신의 민주화운동 이력 때문에 고통 받고 있는 한국의 가족들 곁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러나 공고를 나온 아빠는 지연, 학연도 없는 자신이 한국에 돌아가면 출세할 수 없을 것 같아 고민스러웠다. 하지만 그들은 한국으로 돌아온다. 아들 문칠은 명문대를 나와 좋은 직장에 다녔다. 하지만 그 길을 벗어나 불안정한 영화인이 되고부터는 불안했다. 딸 문숙은 문칠과 달리 한국 사회에 자신을 맞추는 건 죽을 만큼 힘들었다. 스무 살에 캐나다로 갔다. 아이를 가지고 싶었고, 임신한 후 한국으로 돌아왔다. 엄마와 아빠, 문숙과 문칠을 우리는 민주화운동가, 고졸 남성 노동자, 불안정 영화인, 비혼모로만 부를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을 한 가지 정체성에만 집중해 바라볼 수 있다. 하지만 문숙은 유학생이기도 하고, 문칠은 명문대학생이기도 했다. 엄마, 아빠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어떤 장소와 삶의 맥락에 있느냐에 따라 다양한 정체성을 지닌 채 살아간다. 그리고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반차별운동은 ‘차별은 삶의 맥락에서 바라봐야 해, 차별은 사건이 아닌 이야기야’라고 말한다. 이처럼 우리는 문숙과 문칠, 아빠와 엄마의 이야기에 주목해야 한다. 비혼모, 불안정 노동자여서가 아닌 그 사람의 생애를 보아야 한다. 문칠은 말한다. 학교에서는 공부를 잘해 누구도 건드리지 않았다고,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한국 사회에 잘 적응했다기보다 자신을 숨기는 걸 잘했던 것 같다고. 비슷한 상황에 있던 문숙은 한국 사회에 적응하는 게 죽기보다 힘들었다고 토로한다. 우리는 차별을 경험하는 많은 사람이 취하는 전략에 주목한다. 사람들은 모든 차별에 각기 다른 방법으로 대응한다.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싸워야 할 땐 싸운다. 그러나 사람들은 싸움의 자리에 혼자 놓여 있을 땐 쉽게 싸움을 시작할 수 없다. “서로 다르다고 생각했던 사람들.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 다투었지만, 서로가 경험한 시간은 닮은 구석이 있었다. 그 사실이 위로가 된다”는 문칠의 독백은 그들이 함께 싸울 수 있었던 힘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말해 준다. 이들은 서로의 닮은 구석에서 세상에 대해 같이 싸울 수 있는 힘들을 만들었다. 연대의 언어다. 연대는 서로 공감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같이 싸워 나갈 수 있는 힘을 만든다. 이것은 네 사람이 생물학적 가족이어서가 아니다. 비록비혼모인 딸을 부끄러워했지만 아빠가 조금만 더 젊었다면 비혼모단체에서 일했을 거라는 아빠의 말처럼 이들이 서로 공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이들에게 찾아올 이야기들이 평탄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 길에서 때로 서로 상처를 받기도, 상처를 주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문숙, 문칠, 아빠, 엄마가 함께 경험한 공감의 언어는 이들의 연대가 쉽게 깨어지지 않으리라는 기대를 품게 한다. 앞으로 이들이 살아갈 이야기가 기대된다. 그리고 그 속에서 ‘반차별운동’이 만나고 싶은 이야기들이 또 한 번 찾아오길 기다리겠다. 이훈창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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