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9년 1월 1일, 카리브 해의 작은 섬나라 쿠바에서 피델 카스트로가 이끄는 혁명군이 바티스타의 부패한 체제를 무너뜨리고 승리의 팡파레를 울렸다. 그리고 외딴 시골의 산을 근거로 한 게릴라 활동, 사심 없고 대범한 젊은이들에 의해 이뤄진 이 혁명은 당시 라틴 아메리카 전역에서 지식인 투사들을 감동시켰다. 특히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는 영웅으로 숭배됐고, 대부분의 쿠바인들은 피델이 이끄는 혁명 정권에서 진정한 해방과 무한한 가능성을 느꼈다.
반면 미국은 쿠바의 새로운 정권에 노골적으로 반감을 드러냈고 1961년에는 피그스만을 침공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는 실패로 돌아가, 오히려 쿠바 정부를 공산주의로 몰고 가는데 큰 역할을 했다. 당시 라틴 아메리카 반란자들의 반제국주의적·사회혁명적 전통도 여기에 일조했다.
피델 정부는 주택 공급, 의료 서비스의 개선, 토지 개혁, 무상 교육의 확대 등 급진적 개혁에 착수했다. 경제 봉쇄 조치 등 미국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일련의 개혁 조치는 성과를 거뒀다. 문맹이 퇴치되었고, 교육 기회가 확대되었으며, 실업은 사라졌다. 의료 혜택은 모든 이들에게 돌아갔으며, 의료 부문에서의 놀라운 발전으로 세계보건기구에 의해 ‘의료 강국’으로 공인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1991년 소련 사회주의의 몰락은 소련의 경제 원조에 의지해 오던 쿠바에 엄청난 타격을 안겨줬다. 곧 밀어닥친 석유, 원자재, 소비재의 부족 현상은 곧 쿠바 국민들을 궁핍에 몰아넣었고, 피델은 집권이래 가장 큰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피델의 장기 집권에 맞서 정치자유화의 요구도 함께 터져 나오고 있다. 과거 부모 세대를 혁명 과정에 동참하도록 이끌었던 피델의 카리스마는 내핍한 생활을 강요당하고 있는 젊은 세대들 앞에서 그 마력을 더 이상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주영/인권운동사랑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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