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티 민중들은 살인적인 만행을 저질러온 두발리에 독재 정권에 저항하여 1985년 봉기를 일으키고, 마침내 1990년 12월 16일 민주적으로 치러진 선거에서 민중 후보인 장-베르트랑 아리스티드를 67%라는 압도적인 지지로 대통령으로 선출한다. 그는 재임 초 7개월 동안 부패 공무원의 대대적인 숙청과 군장성 해임을 단행했는데, 이는 보수파들의 저항을 불러와 1991년 9월 30일 미국의 사주를 받은 군사 쿠테타에 의해 미국 망명길에 오르게 된다. 그후 내부 우익과 결탁한 미국 군대는 3년 동안의 쿠테타 기간 동안 5천여 명의 사람들을 학살하는 범죄를 저지른다.
아리스티드와 함께 아이티 민주화 운동의 크게 기여한 인물은 앙트완 이즈메리이다. 그는 아리스티드가 축출될 때 함께 망명할 것을 거부하고 아이티에 남아 민주화 운동을 이끈다.
그 과정에서 이즈메리는 친동생을 잃게 되고 그 또한 테러에 의해 죽음을 맞이한다. 이즈메리의 암살은 대외적으로도 큰 파장을 불러 일으켰고, 미국으로 하여금 아리스티드를 다시 대통령으로 복위시키는 결정을 하게 만든다. 그러나 이전과 같이 민중의 편에 서서 진정한 민주 사회를 구현하고자 하는 정부가 되는 것은 미국이 결코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CIA는 아이티에 프랩(Fraph)이라는 괴뢰조직을 만들어 상상을 초월하는 테러를 사주하면서 아리스티드에게 강요한다. “아이티 민중들이 더 이상 피를 흘리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면 미국의 꼭두각시 정권이 되는 것을 받아들여라.” 아이티는 현재 우리와 마찬가지로 IMF를 맞아 국영 기업이 매각되는 등 국가적 위기에 놓여있다.
<김도형/변호사>
댓글
타인을 비방하거나 혐오가 담긴 글은 예고 없이 삭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