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해설: 레즈보포비아

인권해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인종 분리 및 차별 체제였던 아파르트헤이트를 공식적으로 종료시킨 뒤 성적 지향에 의한 차별 금지를 헌법에 명시했다. 여러 사회 영역에서의 차별 금지를 다룬 각종 법률의 제정, 동성 간 혼인의 성문화, 성별 정정의 제도화와 같은 노력은 다른 국가나 지역과 비교해 봐도 상당히 전향적인 축에 든다. 아파르트헤이트 종식 이후 다양한 문화가 분쟁없이 공존하는 시공간을 꿈꾼 데스몬드 투투 대주교는 남아공의 별칭으로 ‘무지개 국가’라는 표현을 고안했고 넬슨 만델라 대통령 또한 이를 즐겨 사용했다. 이때 무지개는 평화와 희망으로 가득한 국가를 건설하여 빛나는 미래를 이룩하자는 염원을 담은 상징이다. 그런데 무지개란 주지하다시피 세계적으로 성소수자의 자긍심을 나타내는 상징으로도 쓰인다. 사정이 이러하다보니 ‘무지개 국가’라는 별칭은 성소수자 권리에 대한 남아공의 법적 보장 장치와 더불어 이 국가를 쉽사리 성소수자 친화적인 사회로 상상하게 한다.

<레즈보포비아>는 그 이면의 실상을 고발하는 다큐멘터리이다. 성, 성별, 성적 지향에 의한 차별을 금지하는 헌법과 법률이 엄연히 존재함에도 남아공 사회의 레즈비언들은 끊임없이 협박받고 폭행당한다. ‘교정’ 강간의 피해자가 된다. 무참하게 살해된다. 인터뷰에 응한 레즈비언 활동가들은 남아공 사회에 견고하게 자리 잡은 가부장제와 남성중심주의를 레즈비언에 대한 공격과 범죄의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로 지목한다. 여성을 남성과의 관계 속에서만 그나마 의미있는 존재로 보는 자들이 그걸 거부하는 레즈비언들을 가차없이 단죄하고자 한다. 자신들에게 위협적인 존재를 고치거나 없애려는 남성들의 필사적인 의지가 레즈비언을 겨냥한 폭력으로 나타난다. 보수적인 흑인 부족 공동체 내에서는 동성애를 서구 문화와 백인이 전파시킨 악으로 보는 시각과 여성 억압적 통념이 결합하여 레즈보포비아가 강화되고는 한다. 성서를 문자 그대로만 해석하는 기독교 근본주의자들 또한 레즈비언을 지역 및 종교 공동체로부터 내모는 데 크게 기여하는 세력이다.

마지막 장면. 한 무리의 레즈비언들과 지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춤을 추며 경찰서를 향해 행진해 간다. 레즈비언을 강간하고 도주 중인 가해자를 체포하는 데 소극적인 경찰에 대해 책임을 묻는 시위이다. 참가자들은 피해자가 더 이상 공포 속에서 살아가지 않도록 경찰이 나서라고 소리 높여 주장한다. 이들의 요구는 갈급하다. 같은 사람에 의해 또 다른 피해자가 발생하는 것 역시 시간문제이기 때문이다. 고통을 새기고 슬픔을 삼킨 몸으로 뚜벅뚜벅 걷고 뛴다. 그녀들은 그렇게 살아 있다. 있는 그대로 살게 해 달라고 외치고 있다.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행위가 곧 스스로를 폭력과 살해의 표적으로 만드는 현실 속에서도 이들은 우리를 살도록 하라고 주장하기 위해 살아 있음을 온몸으로 증언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러나 구경꾼들의 표정은 종잡을 수 없다. 일그러진 얼굴들이 뜻하는 바는 무엇인가. 당당하게 시위하는 이들에 대한 충격과 경악의 표현인가. 왜 저래야만 하는지 도무지 모르겠다는 불편함의 표출인가. 어떻게 생각하면 좋을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 찌푸림인가. 단지 덥고 눈부실 따름인가. 우리가 이러면 불편하겠지만 그렇게 불편해 봐야 한다. 우리야말로 저들 때문에 매일매일이 불편하다. 단지 레즈비언이라는 이유로 칼을 맞고 강간을 당해야만 했던 한 레즈비언 활동가가 카메라를 보고 말한다. 그녀는 살아남았고 아직 할 일이 많다. 화면 속 용감한 얼굴들이 때 이른 부고란에 실려 우리에게 전해지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무지개 국가’라는 말이 차별과 폭력의 쓰라린 현실을 덮는 포장지가 아니라 남아공 사회를 실질적으로 구성하는 원리로 자리 잡기를 빈다.

이진화/케이 (한국레즈비언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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