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 없는 도시를 위하여
도시 공간의 발전은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질을 향상하는 가운데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자고 일어나면 공사판이 벌어지고 도로는 온통 파헤쳐지고 있다. 자신의 과거를 돌아볼 공간은 사라지고, 그 자리는 아파트와 건물이 들어서고 있다. 한국의 주택보급률은 이미 전국 평균 102.6%이지만, 서울 시민의 절반은 자기 집 없이 전세나 월세를 전전하며 살고 있다. 집은 넘쳐나지만, 사람들이 집을 구하지 못하는 모순이 발생하고 있다.
따라서 ‘모든 이들이 차별 없는 도시를 어떻게 만들어 나갈 것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은 쉽지 않아 보인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자니 끝은 보이지 않고, 구체적인 정책은 실타래처럼 얽혀 있다. 그마저도 ‘법’이라는 장치로 에워싸고 모든 문제는 항상 법대로 해결해야 한다. 하지만 따져 보자, 법은 어디에 있는가?
도시는 개발을 통해 자본의 축적과 재생산을 위한 필수 과정으로 전락했으며, 과잉축적으로 인한 경제적 위기를 해결하는 핵심적 수단이 되어 버렸다. 재개발 조합이 법을 내세워 세입자들을 내쫓을 수 있게 되었고, 건설자본과 금융자본이 공간을 통해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는 배경이 되었다. 자본이 장악한 거리는 노숙인과 노점상처럼 낙인찍힌 사람들을 쫓아내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도시 공간의 독점적 사유화와 이를 통한 자산 이득의 배타적 전유는 우리 삶을 파괴하였고, 사회 공간적 배제를 초래했다.
하지만 우리의 헌법 35조에 따르면 “국가는 주택개발정책 등을 통하여 모든 국민이 쾌적한 주거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말한다. 저들도 자본의 안정적 발전을 위해 재생산 영역에서의 극단적 모순을 원치 않는다. 문재인 정부는 주택난에 허덕이고 있는 대다수 서민의 주거권 보장이라는 국가적 책무를 위해 여러 차례 주택정책을 내오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나라의 보유세 실효세율은 1.28%로 선진국의 1/5에 불과하다. 집값을 잡고 투기세력을 압박할 근본적 대책이 없다. 이밖에 분양원가 공개, 재건축초과이윤 환수제 등 불로소득을 통제할 방법도 보이지 않는다. 물가지수에 맞추어 전·월세 상승을 인정 한도 내로 규제하는 ‘전월세 상한제’와 ‘계약갱신 청구권’ 등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계속 거주할 권리도 단계적 도입으로 미루거나 유보적이다. 무엇보다 주거 취약계층의 주거권을 보장하는 공공임대정책도 다주택자나 건설자본의 임대사업인 뉴스테이 사업과 같은 기업형 민간주도 정책을 통해 가려져 있거나 부풀려 있는 셈이다. 결국, 문재인 정부도 투기와 건설자본의 토지? 주택보유에서 나오는 불로소득을 사회로 환수하려는 노력이 없어 보인다.
모든 권리는 실정법을 넘어 새로운 권리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정의, 평등, 보편성 등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기 위한 권리는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인간다운 삶을 위한 주거권도 오랜 민중의 투쟁 속에서 하나둘씩 만들어졌다. 아직도 고통과 슬픔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그래서 도시 빈민들이 외치는 ‘법보다 밥’이라는 구호가 문재인 정부에서도 여전히 외쳐지고 있는 것일 테다.
최인기(빈민해방실천연대 수석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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