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이럴 수밖에 없다는 거 아시잖아요. 제발, 이러지 마세요.”
눈물이 그렁그렁 한 채, 말을 건네는 그는 구사대였다.
2009년 여름,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공장점거파업이 두 달을 넘기도록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폭염이 계속되었다. 공권력과 무장한 경비용역 그리고 구사대에 의한 폭력이 이어졌고, 식량, 식수, 전기, 의료진 차단과 함께 노동자들의 고립이 길어져만 갔다. 식량과 생필품 반입을 요구하며 공장출입구 바리케이드를 사이에 두고 얼굴을 맞대고 매일 밀고 당기던 그때, 그가 진심을 의심할 수 없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하자 가슴이 덜컹했지만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예요? 어서 비키세요! 소리치곤 다시 싸우기 시작했다. 그 후 한동안 아침에 일어나면 평택으로 가서 그를 찾아야 할 것 같았다. 이해하고 싶진 않지만, 당신의 고통을 쏘아붙이며 외면해서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게 동료를 버린 배신자라는 비난을 들으며 고개 숙이다 그 시간을 버티기 위해 오히려 단단히 악을 쓰는 것으로 변해가는 구사대, 인간 밑바닥을 보는 것인가 절망을 줬던 그 사람들 사이에서 눈물로 신호를 줬던 그에 대한 나의 예의라 생각했나보다. 그게, 그렇게 내몰리면 그리 저지를지도 모를, 비참해지고 싶지 않은 우리를 위해 자신에게 거는 사람됨의 약속이자 용서.
“용서는 없다”
그 지옥 같던 여름을 길게 늘인 듯 몇 계절을 보낸 대한문의 어느 날, 분노한 사람들이 내건 말이다.
사람들은 그 곳에서 아이히만을 보았다. 그가 국가라는 이름을 걸고 저지르는 폭력과 멸시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권리를 찾고자 하면 그와 동시에 ‘권리를 찾을 권리 없음’ 선언을 하는 국가에게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싸우는 노동자들이 대한문에 멈춰 섰다. 그리고 함께 하고파 찾아드는 사람들이 이어졌다. 아이히만은 권리를 제한 할 수 있는 예외법조문을 구석구석 찾아와 읊조리며 추모와 애도의 시간과 장소를, 공존의 목소리를, 노래를, 몸짓을, 연대를, 사람됨의 선언을, 크고 작게 필요한 일상까지도 철저히 틀어막았다. 집회시위의 자유, 표현의 자유, 노동권 등 권리의 목록은 왜냐는 질문과 함께 결코 허용되지 않았고, 어이없고 간교한 폭력이 반복되었다. 힘껏 싸울수록 폭력의 강도는 높아져만 갔다. 가장 참담한 것은 누구든 그 공간에 뜻을 함께하는 순간 그는 시민이 아닌 이, 존재와 뗄 수 없는 권리를 박탈당한 이, 그렇게 취급해도 되는 이가 되어버리는 모멸감이었다. 그런 취급을 하는 국가와 임무라 하며 그 뜻을 수행하는 이들과 같은 시간을 살아가야한다는 공포와 함께.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것만으로, 보편적인 권리, 온전히 살아가기 위해 인간이 서로에게 약속하고 인정하는 권리가 인권이라 했던가. 그 약속의 결정체를 자처하는 국가와 이를 수행하는 이가 우리의 온전함을 침해하는 것을 허용할 수 없다. 국가범죄. 국제인권법 그리고 국제 선언과 원칙들이 평화를 해치고 전쟁을 비롯한 반인도적인 범죄와 그 수행에 연관된 행위도 범죄라 정하고 있다. 이는 좀 더 나은 삶을 위하기 이전에 우리의 존재기반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이다.
‘대한문을 지켜라’가 아이히만이 지니는 명령이라기보다는 인권을 구석구석 만들어가야 할 우리가 쏘아올린 저항의 신호이지 않았을까.
기선 인권운동공간 활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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