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해설: <당신과 나를 잇는 법>

인권해설

<당신과 나를 잇는 법>은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 역사상 처음으로 국회 앞 농성에 돌입하던 2021년 11월 8일의 기억을 소환한다. 비가 내리는 날, 국회 앞에 모인 이들은 무지개 우산을 기둥 삼고 테이프로 붙인 비닐을 지붕 삼아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우리만의 비닐 농성장을 세웠다. 농성 천막 반입을 막으려는 공권력의 필사적인 방해 속에서 ‘평등의 원칙’을 요구하며 비닐지붕 아래 함께 서 있던 ‘우리’는 누구였을까, 또 어떻게 만날 수 있었을까.

2030 퀴어/페미니스트 정체성을 공유하는 다섯 감독들의 이야기는 ‘차별에 맞서는 우리’를 열망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질문을 던진다. ‘당신과 나’의 거리는 서로의 차이를 확인하는 경계일 뿐인가, 누군가의 존재와 목소리를 삭제하지 않고 ‘다룰 수 있는’ 연대는 어떻게 가능한가, ‘사람답게 살 권리’를 외치는 나는 누구와 함께 어떤 변화를 만들어내고 싶은가.

기본적으로 당사자 운동에서 정체성, 이름짓기의 정치학은 보편의 이름으로 차이를 삭제 혹은 융해시키려는 시도, 차별의 구세주 혹은 대리인 역할을 자처하는 국가 및 지배 권력에 대항해 당사자의 경험과 관점, 주체성을 삭제하지 않으려는 노력에서 시작되었다. 그렇게 ‘여성’이라는 정체성 역시 성별 권력관계의 불평등에 분노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많은 여성에게 저항의 장소가 될 수 있었다. ‘나는 너다’, 강남역 여성혐오 살해 사건 직후 남겨진 한 장의 포스트잇은 한국 사회의 젠더폭력에 맞서고자 하는 여성들의 대표적인 강력한 선언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동일시와 정체성에 기반한 저항의 언어는 항상 긴장을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너’의 고통을 이해한다고 선언하고 동일시할 수 있는 ‘나’는 누구인가? 누가, 무엇을 기준으로 ‘나’로서 승인되고 대표되는가? 여성주의 운동의 역사가 보여주듯, 여성이 ‘여성’이라는 젠더 경험으로만 환원될수록 다른 억압체계로 인한 차별을 경험하는 여성들 내부의 차이(동일시할 수 없는 세계)는 가시화되기 어렵다. 또한 당사자 혹은 피해자로서 여성 정체성의 단일성이 강조될수록, 이를 해결해야 하는 주체의 자리에 ‘여성/자신’만이 남게 되기 쉽다.

동일성에 대한 긴장과 대표성에 대한 문제 제기는 성별 권력관계에서의 약자로서 여성의 사회적 지위, 성차별을 경험하는 대다수 여성의 피해 경험을 부정하거나 축소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반차별 운동의 역사에서 이는 여성 및 소수자에 대한 혐오의 문화를 부정하고, 차별의 위계와 소수자 낙인을 이용해 성차별적인 사회구조의 문제를 회피하며, 보호와 처벌로 안전하고 평등하게 살아갈 권리에 대한 요구를 잠재우려는 지배 권력의 근본적인 문제를 더 깊고 너르게 다루기 위함이었다. 또한 이러한 지배 권력의 폭력에 공통으로 영향을 받으면서 부정의를 공통으로 인식하는 ‘우리’의 저항을 재구성하기 위한 출발이다. 차별과 불평등에 기여하는 것을 거부하고 부정의를 바로잡고 할 때 우리에게는 정상성의 기준을 질문할 수 있는 힘, 이를 함께 제기할 수 있는 더 많은 동료를 필요로 한다.

몽(차별금지법제정연대)


차별금지법제정연대 https://equalityact.kr/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차별의 예방과 시정에 관한 내용을 담은 법이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다양한 단체들이 모여 행동하는 연대체로, 2022년 9월 현재 167개 인권시민사회단체와 15개의 지역 네트워크가 함께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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