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해설: 니가 필요해

인권해설

영화 속에는 미처 나오지 않는 수많은 얼굴들이 떠오른다. 어떤 일에도 당찼던 꼬마 부부, 딸 셋을 낳고 또 아이를 낳으러 간 언니, 짠돌이였지만 때때로 고생한다고 거금을(그래봐야 지폐 몇 장의 쌈짓돈이지만) 내놓던 형님, 늘 주변을 즐겁게 해주는 성현성…. 그리고 영상에 등장하는, 끝까지 버텨낸 이들….

대공장이라는 이름이 무색한 냄새나는 개천가 가건물에서 한여름의 폭염, 한겨울의 칼바람을 그대로 맞아가며 최저임금을 받고 일했다. 상여금이란 건 있어봐야 1년 사이 업체가 세 번이나 바뀌는 통에 그림의 떡이었다. 세 번째 업체에서의 생활도 잠시, 우리가 일하던 공정을 공장 밖으로 빼면서 인원을 줄이고 조건은 더 열악해질 거라는 소문이 돌았다. 업체가 세 번을 바뀌는 사이 번번이 더 아래로만 곤두박질치려는 노동조건 때문에 함께 회사에 맞섰던 DYT 언니들은 이번에도 열심히 싸웠다. 그러나 결국에는 회사를 따라나섰다. 외주화는 DYT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스피드, 욱산, 대일 등 많은 하청업체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원청업체의 생산성 향상(생산성 향상의 방법은 십중팔구 인원을 줄이는 것이다)이니 외주화니 하는 계획으로 일상적인 고용불안에 시달렸고 그 중 실제로 많은 수가 잘려나갔다. 천여 명 가까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무더기로 잘려나가던 시기는, 아이러니하게도 지금껏 판매가 부진했던 지엠대우차가 가장 잘 팔려나가던 시기였다.

그 와중에 비정규직 노동조합이 결성되었고 결과는 처참했다. 지회 설립과 동시에 기다렸다는 듯이 몰아친 탄압으로, 조합에 가입했던 상당수는 곧바로 탈퇴를 했고 버텨낸 이들은 해고당했다. 하청업체들은 원청의 눈치를 볼 뿐이었고, 하청업체의 노동자들은 누가 봐도 원청인 지엠의 감독 하에 일을 해 왔다. 그리고 이를 증명해야 하는 것은 노동자들의 몫이었다. 쫓겨난 노동자들은 이를 증명할 방법도 회사를 상대로 싸울 방법도 없었다. 할 수 있는 건 고작 공장 밖에서의 처절한 투쟁이었다. 안 해본 것 없이 4년여의 시간이 흘렀다. 천막농성은 기본이고, 교통관제탑에도 오르고, 한강물에도 뛰어들고, 단식을 하고, 또 회사 건조물에 오르고…. 그렇게 마침내 공장으로 돌아왔다.

그 사이 많은 이들이 하나둘 곁을 떠나갔고 남아 있는 이들은 또 그냥 그렇게 투쟁을 이어갔다. 그 와중에 갈등도 있었지만 또 서로가 서로를 지탱해온 시간이었던 것 같다. 떠나간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어쨌든 시작하던 순간에는 그들도 함께였기에 가능했던 일이니까.

조혜연(한국지엠부평비정규직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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