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해설: 뉴 블랙

인권해설

2008년 버락 오바마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남성 대통령이었다. 바야흐로 흑인이 합중국 최고통수권자의 자리에 올랐으니 흑인 커뮤니티는 더 이상 미국 사회의 마이너리티가 아니게 된 것 같았다. 정치영역에서의 과소 대표로 인한 사회적 비가시화도 이제는 걱정할 필요가 없어 보였다. 미국 흑인의 역사에서 그만한 승리의 순간이 있을까 싶었다.

그렇지만 흑인 커뮤니티 전부가 마냥 t기뻐하기만 할 수는 없는 사정이 존재했다. 오바마가 당선된 바로 그날, 캘리포니아 주에서는 동성 결혼의 제도화를 무마시키는 주민발의안 8 (Proposition 8)이 주민 총투표로 통과됐다. 그리고 새로운 전선이 그어졌다. 흑인과 백인 사이도 여성과 남성 사이도 가난한 자와 부자 사이도 아니었다. 동성혼 법제화 운동 진영과 흑인 커뮤니티 사이의 전선이었다. 동성애자 권리 운동 진영은 버락 오바마의 당선을 전방위적으로 도왔는데 흑인 커뮤니티는 주민발의안 8의 통과를 막는데 기여하기는커녕 오히려 힘을 실어줬다는 이야기가 파다했다. 흑인 커뮤니티는 한꺼번에 호모포비아 집단으로 환원되었다. 졸지에 동성애자 운동의 적이 되었다. 인종주의 철폐를 통한 보편적 권리를 요구하며 시민권 운동의 중심축으로 활약하고 대통령을 배출할 정도로 탄탄히 정치적 역량을 길러온 흑인 커뮤니티가, 보수적 가족 제도 최후의 보루로 순식간에 상징화되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요루바 리첸의 <뉴 블랙>은 바로 그와 같은 새로운 적대의 장 속에서 태어난 다큐멘터리이다. 흑인 커뮤니티 안에도 당연히 많은 성소수자 당사자들, 동성혼 법제화 운동 활동가들, 그리고 이들의 지지자들이 존재했다. 이들은 주민발의안 8 통과의 배경으로 흑인 커뮤니티의 집단적 호모포비아를 지목하는 자들이 보이는 의혹과 실망과 불신의 시선에 당황하고 분노했다. 그리고 동시에 흑인 커뮤니티 내부에서 동성혼 법제화라는 의제를 본격적으로 공론화 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흑인 커뮤니티는 균질하고 단일한 집단이 아니었다. 일각에서 공격하는 것처럼 단순한 호모포비아 집단도 아니고, 그렇다고 모든 억압과 차별의 문제에 빠짐없이 급진적인 집단도 아니었다.

한편에서는 동성혼 법제화 운동 진영이 흑인 커뮤니티를 원망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우파 보수 기독교계가 호모포비아를 매개로 인종 간 연대를 모색하는 기묘하게 뒤틀린 정치 지형 속에서 <뉴 블랙>은 2012년의 메릴랜드 주(2010년 인구 센서스에 따르면 가장 큰 도시인 볼티모어의 흑인 인구 비율이 63.7%로 미국의 도시들 중 다섯 번째로 그 비중이 높음)를 찾는다. 그해 2월 메릴랜드 주 의회는 동성결혼보호법(Civil wMarriage Protection Act)을 통과시켰다. 이에 즉각 보수적인 성향의 교회들을 중심으로 극렬한 반대 세력이 형성되었고 11월 대통령 선거일에 맞춰 해당 법에 대한 찬반을 다투는 메릴랜드 주 주민 총투표가 잡힌다.

다큐멘터리는 총투표를 앞둔 메릴랜드 주의 흑인 커뮤니티가 법제화에 대한 지지 세력과 반대 세력으로 나뉘어 열띠게 겨루어 나가는 모습을 담았다. 흑인 커뮤니티가 흑인 가족, 흑인 교회, 흑인 공동체에 대해 다시 고민하고 탐색하는 면면을 고루 보여준다. 지지 세력과 반대 세력의 입장을 교차시켜 나가며 흑인 커뮤니티 내부의 입장 차들을 펼쳐 놓는다. 그러면서 궁극적으로는 “새로운 흑인(뉴 블랙)” 공동체란 흑인들 가운데 엄연히 존재하는 동성애자들과 동성 커플 가족들을 부정하고 지움으로써가 아니라 이들을 구성원으로 인정하고 이들과 더불어 구성해 나가야 하리라는 점을 시사한다. 동성애자 및 동성 커플 가족에 대한 인정과 지지가 흑인 커뮤니티를 약화시키는 게 아니라 강화하는 길임을 보여주고자 한다.

11월 오바마는 재선되고 메릴랜드 주의 동성결혼보호법은 과반의 표를 얻어 비로소 발효가 확정된다. <새로운 흑인>은 오바마가 그의 두 번째 취임 연설에서 동성애자의 권리를 직접 언급하는 대목을 보여주며 끝난다. 연임에 성공한 흑인 대통령의 동성애자 권리 지지 발언은 그 장면을 목격하는 무수한 이들에게 취임식의 하이라이트로 각인됐다. 하지만 대통령이 흑인이라고, 바로 그가 동성애자 권리를 지지한다고 미국 사회 전체가 문득 인종주의와 호모포비아를 말끔히 넘어 서지는 않는다. 결혼 평등의 법제화 역시 동성애자 권리 운동의 전부가 아니며 “동성애자” 권리 운동의 지형이 다양한 성소수자들의 사정을 대변하는 것도 아니다. 차별과 빈곤과 범죄화의 악순환 속에서 흑인을 비롯한 유색인종-성소수자들은 여전히 집이 없고 부당하게 구금되며 일터에서 쫓겨난다. 그래서 “새로운 흑인”에 대한 고민은 <뉴 블랙>이 다루는 바들을 넘어 계속될 수밖에 없다.

2013년 6월 26일 연방대법원은 동성혼 법제화를 가로막는 주민발의안 8과 결혼보호법 (DOMA: Defense of Marriage Act)의 위헌성을 확인하는 판결을 내린다. 시민권 확장에 유의미한 진전임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같은 연방대법원이 하루 전날 내린 판결은 완전히 딴판이다. 60년대 흑인 민권 운동의 핵심적 성과 중 하나인 투표권리법(Voting Rights Act)의 주요 조항(인종차별이 심했던 남부 지역 일부 주에서 선거법을 개정하고자 할 경우 연방정부의 승인을 반드시 얻도록 한 조항)에 위헌성이 있다고 확정지은 것이다. 이는 인종을 차별 금지 범주로 간주하지 않는 것이 인종에 대한 중립적 인식이라고 보는 포스트-인종주의적 경향의 반영으로 여전히 인종주의가 팽배한 미국 사회에서 그 자체로 인종주의적인 판결에 다름 아니다. 동시대를 관통하는 이 두 가지 판결 내용을 배경으로 흑인 커뮤니티, 성소수자 커뮤니티, 흑인-성소수자 커뮤니티는 어떻게 같이 고민하고 연대해 나가야 할까? 지금 미국 사회에서 이 질문은 현재 진행형이다. <새로운 흑인>은 그래서 미국 사회, 흑인 커뮤니티, 그리고 성소수자 운동 진영이 이제까지 이룩한 바보다 앞으로 이뤄나가야 할 바들을 더 많이 생각하게 하는 다큐멘터리이다.

이진화/케이 (한국레즈비언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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