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0월 외신을 통해, 대만의 수도 타이베이 중심가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단지 앞 도로를 2만여 명의 사람들이 점거해 누웠다는 뉴스를 접했다. 그들은 타이베이 시의 주택 가격 폭등과 정부의 주거정책에 항의하며, 가장 비싼 땅을 점거하고 누워 하룻밤을
보냈다. ‘새둥지 운동(巢運·차오윈)’이라고 불리는 연대시위는 지난 1989년 무주택자 5만 명이 거리시위에 나선 이후 25년 만에 최대 규모였다고 한다. 대만도 한국만큼 도시개발의 폭력과 주택가격의 폭등 등 땅과 집을 둘러싼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
는 사건이었다.
< 눈물의 길 : 타이베이, 여성, 집 >은 대만 정부의 도시개발과 강제철거로 ‘추방’당하는 각기 다른 마을들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들은 그들의 마을이 파괴되는 도시개발을 ‘인간이 만든 재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 ‘인간이 만든 재해’에 대해, 정부와 건설사와 법원은 ‘사유지에 관한 분쟁’이라거나 ‘그 마을이 무허가이고 불법’이라며, 책임을 주민들에게 떠넘긴다. 대만이나 한국이나 도시개발과 강제퇴거로 인한 폭력이 법의 보호 아래 이루어지고 있고, 저항하는 우리가 불법이 되거나 혹은 용산에서처럼 테러리스트라는 낙인이 찍히게 된다.
모든 개발사업들에서 주민들은 ‘사적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공공의 외면’ 아래 쫓겨나거나, 반대로 ‘공적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공공의 이익’에 반한다며 쫓겨난다. 단순히 집 하나 부수고 짓는 것이 아닌 마을을 부수고 짓는 개발사업이, 때로는 ‘사적 이익’을 위해, 때로는 ‘공적 이익’이라는 이름으로, 즉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 추진되는 데, 그 끝은 항상 ‘도대체 누구를 위한 개발이냐!’며 절규하며 끌려나오거나, 쫓겨나는 사람들의 목소리로 가득하기만 하다. 국제행사, 국격향상, 도시환경 정비, 주거환경 개선, 주택공급 확대…. 온갖 목적의 수식어들을 가져다 붙여놓아도, 결국 파괴되는 공동체와 개인의 삶이, 동일한 수준으로 재정착될 수 없다면 그것은 가진 자들만을 위한 개발에 불과하다.
시공간을 넘나들지 않더라도, 우리는 아직 용산을 어제의 한 사건으로 잊을 수만은 없다. 여전히 주상복합이 들어서는 화려한 도시의 이면에서 삶이 송두리째 빼앗긴 이들의 몸부림이 이어지고 있고, 계약갱신 거부나 전월세 폭등, ‘빚내서 집 사라’는 강요된 이름으로 우리의 주거권이 빼앗기고 있고, 추방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저항하고 연대하는 우리가 아닌, 법 집행이라는 이름으로 대책 없이 남발되는 강제퇴거가 ‘불법’이고, 주거권의 박탈이 주민들에 대한 ‘테러’임을 밝혀야 한다. 주거권을 명문화하는 ‘강제퇴거금지법’ 제정이 필요한 이유이다.
이원호(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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