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꽃 너머로 보이는 당신의 얼굴들. 살아서 만났으면 더 좋았을 것을, 나는 정확히 당신들이 어떤 사람이였는지를 당신들이 떠나고 나서 텍스트로 읽게 되었다. 감히 평가할 수 없는 한 우주가 떠나는 것을 이리도 허망하게 바라보아야 한다니, 이 단단한 죽음들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낙인의 사슬 장애등급제와 빈곤의 사슬 부양의무제 농성장은 2012년 8월 21일, 비가 많이 오던 여름날 차려졌다. 아무것도 없었던 광화문 농성장에는 2015년 지금, 총 11개의 영정 사진이 놓여져 있다. 이 영화는 11개의 영정 사진들과 함께있는 지역사회에 나온 지 6개월 만에 꿈을 져버릴 수밖에 없었던 국현 형의 이야기이다.
작년 봄, 노들장애인야학으로 국현 형이 왔다. 한글을 잘 모르던 그는 장애인을 더 이상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살게끔 활동하는 탈시설 활동가들의 지원으로 함께 학교를 다녔다. 시설을 24살에 들어가게 되었다는 형의 나이는 2014년 봄, 53세였다. 4월 13일 체험홈에(시설에서 나와 자립생활을 온전히 하기 전까지 머물다가 가는공간) 불이 나게 되었다. 형이 있던 방까지 불이 번졌지만 국현 형은 침대 위에서 그을린 채로 전신 3도의 화상을 입고 병원으로 실려 갔다. 국민연금 공단은 그런 그의 장애를 5급으로 판정, 활동보조 서비스를 받지 못하게 하였다. 다시 이의신청을 하고 싸웠던 그 기간에 그렇게 화마가 그의 삶을 휩쓸었다. 그리고 세월호 참사가 있은 지 바로 다음날인 17일 형은 영원히 떠났다.
전체 삶의 대부분을 시설에서 보내다 자립생활을 하기 위해 지역사회에 나온 지 6개월만의 일이다. 27년 만에 시설 밖으로 자유로운 삶을 살게 한 그에게 너무 가혹한 일이였다. 현재의 장애등급은 본인의 손상의 조건을 밝히며 ‘내가 당신보다 더 장애가 심하다.’라는 명목으로 줄세우기를 한다. 그리고 등급별로 사람을 나누어서 1급~6급까지의 장애등급으로 사람을 나누어 해당되는 등급별 서비스만을 제공한다. 일본을 제외하면 전세계에서 실제로 사장된 제도인 장애등급에 따른 서비스를 제공하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살 수 있었는데, 그랬었는데.’라는 이 말은 너무나 무겁다. 이 죽음들이 너무나 억울하다. 광화문지하 역사 안에 놓인 11개의 영정 사진들, 그 사람의 단단한 죽음들, 이 죽음에 억울한 나날들. 그 죽음을 품고 살아가기엔 아직 우리는 너무 떨리는 존재들이다. 광화문역사 지하2층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폐지 광화문 농성장에 함께해 주시길, 이 단단한 죽음들의 무게를 우리 함께 안아갈 수 있었으면 한다.
한명희(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폐지 광화문공동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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