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외침, “Get Out!”>
끝없이 “나가!”라고 외치지만 그들은 꿈쩍도 않는다. 한 번 안방을 내어주면 그것으로 끝이다. 우리의 의지로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것! 여기에 인권의 근본 문제가 있다.
영화 <나가!>는 대만의 란위 지역과 난티엔 지역의 주민 운동을 교차시키며 보여준다. 란위는 30년째 “나가!”를 외치는 중이고 난티엔은 이제 막 “나가!”를 외치기 시작했다.
생각건대, 대만 정부가 1982년 란위에 핵폐기물을 반입하면서 ‘제도적 근거’를 충분히 마련하지 못한 것 같다. 그래서인지 란위 주민의 30년 외침은 서서히 힘을 발휘했다. 2000년대 들어서 대만 정부는 란위의 핵폐기물 반입을 토지 임대로 변경하면서 한 발 물러섰고, 2010년대 들어서 새로운 핵폐기장 부지로 난티엔을 선정했다. 결국 란위에서 난티엔으로 그들은 ‘이동’할 뿐이었다. 이러한 현실 앞에 “나가!”를 외쳐 온 란위의 반핵 활동가도 자괴감을 느낀다.
한국에서도 2005년 주민투표로 경주 핵폐기장이 결정되기까지 20년간 여러 곳에서 ‘그들’과 엄청난 충돌이 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끝없는 ‘이동’이었을 뿐이다. 특히, 2005년의 주민투표는 ‘제도적 근거’를 부여하면서 그들에게 견고한 안방을 마련해준 쾌거였다. 대만 정부도 란위의 실패를 교훈삼아 난티엔에서 주민투표라는 제도적 근거를 마련하고 있다. 혹시나 반대표가 많을까봐 현 단위 투표를 향 단위 투표로 축소하는 법 개정의 치밀함까지 보여준다.
난티엔 마을의 지도자인 ‘바오레이스 지아나자판’ 할머니는 마을 사람들이 정부의 50억 달러 보상금에 홀리는 모습을 안타까워한다. 또 핵폐기물에 대한 올바른 정보가 제공되지 않는 것을 우려한다. 2005년 경주의 핵폐기장 유치 찬반 주민투표가 꼭 그러했다. 그때 우리가 들은 유치 주장은 이랬다. “중저준위 핵폐기물은 작업자가 사용한 신발, 옷가지 등이다. 집 앞마당에 묻어도 안전하지만 국민들이 불안해 하기 때문에 별도의 처분장을 만드는 것뿐이다.” 그리고 수천억 원의 지원금과 지역발전 청사진이 투표 기간 내내 마을과 마을, 사람과 사람 사이를 침 흘리며 핥고 다녔다.
이러한 현상을 란위의 반핵 활동가인 시난 마페이푸 씨는 “복지식민주의”라고 정의한다. 생소한 용어였는데 생각해보니 적확한 표현이었다. 국가가 국민을 잘살게 해주는 것은 당연한 의무인데, 소외 지역의 사람들은 항상 정부와 거래를 해야만 ‘개발’이 주어졌다. 핵폐기물을 받아야 개발이 주어진다. 도시가 토해내는 배설물을 받아들여야 개발이 함께 주어지는 식이다.
바오레이스 지아나자판 할머니는 핵폐기물이 난티엔에 들어올 경우 목숨이 다할 때까지 투쟁 의지를 밝힌다. “제가 죽으면 사람들이 정부의 횡포에 죽었단 걸 알게 되겠죠.” 아픈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나가!>의 영상은 무척 따뜻하다. “나가!”를 외치는 이들의 밝은 에너지를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대만 주민들의 투쟁을 보고 있노라면 샘이 나기도 한다.
란위와 난티엔의 주민이 모두 승리한다면 ‘그들’은 복지식민주의에 감사할 더 소외된 지역을 찾아서 ‘이동’할 것이다. <나가!>는 주민들의 계속되는 싸움을 남겨둔 채 막을 내린다. “핵폐기물은 심각한 문제예요.” 영화 속 마지막 외침이다.
이상홍 (경주환경운동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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