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한 뉴스를 보고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 들었다. “40년간 함께 살아 온 여고 동창이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안 60대 여성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친구’가 암 판정을 받고 입원한 이후 ‘친구’의 친척이 아파트 열쇠를 바꾸었고, 새로 집을 구해 살다 아파트에서 투신해 숨을 거두었다고 했다. 두 사람의 깊고 오랜 우정으로 비춰졌던 이 사건에서, 우린 이 관계에 제대로 이름붙이고 있을까 하는 질문을 던져본다. 제대로 이름붙이지 못한 사랑과 죽음. 이 두 여성의 삶은 부부, 사랑과 같은 평범한 단어로도 불리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또 다른 레즈비언의 사례도 있다. “작년 초에 내 파트너가 갑작스레 병원에 실려가 입원을 하게 되었다. 한밤중에 입원 동의서를 쓰려고 했는데, 우리가 가족 이상의 사이라고 말을 해도 병원 측에서는 둘은 친구사이여서 사인을 할 수 없다고 못을 박았다. 어쩔 수 없이 친한 게이 친구에게 연락을 해서 그가 남편인 것처럼 말을 해서 입원을 할 수 있었던 웃지 못할 일이 있었다.”1)
「한국 LGBTI 커뮤니티 사회적 욕구조사」에 따르면, 설문조사에 참여한 성소수자의 67.5%(2,132명)가 파트너와의 삶에서 필요한 제도로 ‘수술 동의 등 의료 과정에서 가족으로서 권리 행사’를 꼽았다. 이것은 그/녀가 아프고 병들었을 때, 친구가 아닌 가족, 연인, 부부라는 이름으로 곁을 지키려는 투쟁과도 같다. 이 영화는 현실이며,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이름 붙여지지 못한 사람과 관계에 이름을 붙여주려는 시도이다.
정현희 (가족구성권연구모임)
1)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동성애자 가족구성권자료집』,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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