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아닌 포장도로를 거친 손으로 환영하던 시절. 갯벌을 매립해 국토를 넓히는 게 자랑이던 시절. 골짜기 곳곳마다 세워진 댐들을 소풍으로 찾아다니던 시절. 그런 시절은 분명 있었다. 하지만 개발이 마냥 아름다운 시절은 갔다. 개발이 발전으로 환원되던 시절은 진즉에 끝났다. 멀미 나는 길을 돌고 돌아 우리는 기꺼운 마음으로 거친 식단을 일부러 찾아다니고, 느림의 미학을 트렌드로 받아들이며 콘크리트 같은 인공 구조물 대신 풀과 나무와 흙이 각광받는 시절에 살고 있다. 뭘 해도 앞머리에 ‘친환경’이란 말이 붙어야만 한자리할 수 있는 시절을 우린 보내고 있다.
그런데, 기어이 시곗바늘을 뒤로 돌린 사람들이 있다. 대부분의 선진국이 있던 댐도 철거하는 시절에 16개의 댐을 한꺼번에 세우고야 마는 사람들. 무엇보다 자연생태계를 중시하고 자연하천을 추구하는 지구의 흐름 속에서, 준설로 강바닥을 파내 강줄기를 일자로 만들고 콘크리트 구조물을 강에다 처박고야 마는 사람들. ‘4대강 사업’의 비극은 우리 강을 망친 것에 그치지 않고, 우리가 살아내는 시절을 거꾸로 뒤로 밀어내기까지 했다. ‘4대강 사업’이 자행된 우리 강은 더는 지금 우리의 시절이 아니다.
홍수를 막겠다고 시작했지만, 정작 홍수와 상관없는 곳에 댐을 만들었다. 가뭄을 막겠다고 시작했지만, 정작 가뭄과 상관없는 곳에 물을 가뒀다. 수질을 개선하겠다고 시작했지만,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다. 우리는 홍수에 도움 되지 않는 댐에다가 가뭄에 쓸 수도 없는 썩은 물을 이만큼이나 가둬서 가지고 있는 셈이다. 자랑이라면 자랑이겠다. 하지만 상식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것처럼 목적한 바를 단 한 개도 ‘4대강 사업’은 이루지 못했다. 22조 원이라는 역사상 가장 많은 돈이 들어간 국책사업이다. 2009년부터 2011년까지 초과 노동, 철야 작업 등 과도한 속성 공사로 사망한 노동자만 21명이다. 과연 21세기에 가당키나 한 일인가. 그렇다면 ‘4대강 사업’으로 우리가 얻은 것은 무엇일까.
강을 터전으로 삶을 일구던 어부들을 몰아냈다. 물길이 막힌 강은 더는 강이 아니기에 강에 살던 물고기들은 제 살 곳을 잃어버렸고, 그 물고기들을 쫓던 어부들 역시 이젠 설 곳이 없다. 강을 터전으로 삶을 일구던 농부들을 몰아냈다. 여울과 모래톱을 벗 삼아 농사짓던 곳은 수로처럼 일자로 뻗은 강과 콘크리트로 뒤덮인 둔치가 대신하고, 농부의 땀은 어제의 영화로 기록으로만 남는다. 그리고 두물머리의 사람들처럼 기프실의 사람들처럼 이네들이 쫓겨난 흔적도 도통 찾아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4대강 사업’으로 우리가 얻은 것은 무엇일까.
‘4대강 사업’으로 극소수의 사람은 돈을 불렸겠지만, 누군가는 죽음을 맞았고, 또 누군가는 삶의 터전을 잃었다. 그리고 우리에겐 ‘4대강 사업’이 가져온 비극과 슬픔을 치유해야 하는 숙제가 남았다. 질문이 처음부터 틀렸던 것이다. 다시 물어보자. 그렇다면 ‘4대강 사업’으로 우리가 잃은 것은 무엇인가. 이제 영화를 보시라.
정규석(녹색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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