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해설: 공중캠프

인권해설

그녀는 어딘가를 찾고 있다. 그녀는 자신을 기다리는 장소를 만날 수 있을까. 지금까지 한국 사회는 한 젊은 여성에게도 ‘집’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주택정책은 1인 가구를 별로 고려하지 않았다. 집은 가족의 것이므로, 그런데 가족은 결혼을 통해서 구성되므로. 임대주택은 혼자 사는 사람보다 2~3인 가구를 염두에 두고 설계되며, 청약가점제 역시 가구원 수가 많은 가족에게 가점을 준다. 정부의 정책만 그런 것이 아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사람들의 말은 누군가 주거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문제를 삶에 필수적인 경험으로 둔갑시켜 버린다. 물론 이것은 한국의 전반적인 주거권 현실과 맞물려 있다. 부동산시장의 문제점이 끊임없이 지적되어 왔지만 경기를 부양해야 한다는 이유로 문제를 봉합하기 일쑤였다. 집값은 사람이 들어가 살 수 있는 가격인지를 따져 묻는 기준이 아니라, 시장이 잘 굴러가고 있는지 확인하는 가격이 되었다. 건설회사든, 집주인이 되고 싶은 사람이든, 빚에 빚에 빚을 내서 집을 짓고 사는 구조가 심화되면서 부동산 시장의 불안정성은 증가하고 있다. 그런데 그 피해는 결국 실제로 거주하는 사람들이 지게 된다. 특히나 세입자의 권리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다 보니 집을 살 수 없는 사람들은 더욱 불안한 삶을 이어 가야 한다. 그녀가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헤매는 동네는 개발 사업이 추진되는 지역이다. 절반 이상의 집이 철거되었다. 그곳에서 흔들리는 빨간 풍선은 한국 사회가, 아니 대부분의 사람이 개발에 걸었던 ‘꿈’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개발 사업은 조금이라도 더 저렴하게 거주할 수 있는 집들을 모두 짓뭉개고 극히 일부의 사람들에게만 허락된 주거지를 만들어 왔을 뿐이다. 아직은 남아 있을, 조금 싸게 거주할 만한 집도 언젠가는 헐릴 것이다. 설령 수년의 시간이 허용되더라도 그 동네는 이미 숨쉬기를 멈춰 버린 동네다. 폐허가 되어 버린 동네는 단지 개발의 폐해만 보여 주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이 살 만한 집에 살 권리가 있다는 주거권의 외침을 듣지 않는 한국 사회의 야만을 쓸쓸하게 보여 주는 것이다. 그녀가 가장 그녀답게, 평온하게 존재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가 트렁크인 것은 은유가 아니다. 우리가 ‘집’이라는 서로의 장소를, ‘사람’으로부터 함께 고민하지 않는 한, 우리는 우리의 삶을 담을 수 있는 집을 만날 수 없다.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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