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양쑥부쟁이라는, 남한강을 따라 사는 한반도 태생의 2년생 풀이 있다. 무리지어 가을에 자줏빛 꽃을 피우고, 맺은 씨는 이듬해 싹이 튼 후 그 해가 다 갈 때까지 커 봐야 한 뼘이 되지 않는다. 비옥한 땅에서는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어, 생존을 위해 척박한 자갈밭을 삶터로 택했다. 그렇지만 댐이 만들어지고 홍수라는 강의 복원 기능이 상실되면서 이런 여건의 땅이 줄어들고 결국 멸종위기종이 되었는데, 강을 처참하게 파괴한 4대강사업은 단양쑥부쟁이들을 아예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그래도 이들은 한때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는 점에서 댐 수몰민들보다는 나아 보인다. 1조 원을 넘게 들여 모래강 내성천에 짓는 영주댐 사업은 4대강사업 중 단일사업으로는 규모가 가장 큰 반면 목적은 불분명하며, 그 파괴성은 매우 심각한데도 4대강 본류 공사가 아니기 때문인지 이에 대한 우리 사회의 고민은 보이지 않는다. 2009년 4대강사업 추진 논란 속에 국토부는 영주댐을 전광석화로 밀어붙였고, 400년 전통의 금강마을을 포함한 511세대는 졸지에 수몰민 처지가 되어 버렸다. 평생 농사만 짓다가 폭삭 늙어 버린 촌로는 갈 곳이 없다. 내 땅 한 평 보상받아서 다시 농사지을 땅 한 평을 살 수 없는 현실에서, 대문 열 것도 없는 위아래 집에 찾아가면 밥 주고, 커피 한잔 권하며 말동무해 주는, 그런 이웃이 없는 도시의 집은 이들에게는 시간이 멈춰 버린 감옥일 뿐이다. 보상비는 도시의 아들 딸 사위 며느리에게 돌아가고, 결국 어느 쓸쓸한 자리에서 막걸리로 소일하다가 세상 떠나는 것이 유일하게 남겨진 시간임을 알기에 조상을 파내고, 고향을 가슴에 묻고 떠나야 하는 심정은 말없이 억울하고 허망하다. 금강마을 앞 비단여울 계곡에서 봄의 절정을 알리던 연록의 왕버들도, 분홍빛 산벚꽃도 모두 요란한 전기톱에 베어져 나가고, 강 따라 달리던 기차들도 떠나 버린 지금 영주댐 수몰 예정지 곳곳은 마치 전쟁 뒤의 폐허 같다. 주민들의 고통을 알고 함께하는 것은 운명을 같이할, 먹먹히 흐르는 내성천뿐이다. 지난 3년간 금가이 사람들과 함께 숨 쉬어 온 강세진 감독의 <촌, 금가이>에서 보여 주는, “이곳에서 살수만 있다면 못 추는 춤을 열아홉 번이라도 추겠다”는 미동할매의 유일한 소원은 결코 이룰 수 없는 헛된 꿈인가? 공익이란 미명을 내건 댐 국책사업을 따라서 사람들이, 수백 년의 문화가, 한반도 고유의 아름다운 모래강이, 그리고 그 강에 깃들어 사는 귀한 생명들이 사라져 간다. 박용훈 (강 사진기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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