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의 이스라엘 작품 상영 취소를 환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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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의 이스라엘 작품 상영 취소를 환영하며:

이스라엘의 핑크워싱/문화워싱에 맞서 팔레스타인 해방에 함께할 동료가 되어주시길 요청합니다.

2024 제14회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가 개막을 하루 앞두고 이스라엘에서 제작된 세 편의 영화 <리바이브드 Revived>, <씨 유 라운드 블락 See You Round the Block>, <모어 댄 프렌즈 More Than Friends>의 상영을 취소했습니다. 1년이 훨씬 넘은 가자 학살이 계속되고 있는 지금, 상영 취소를 요구한 모두에게 감사와 연대의 마음을 전합니다. “참혹한 전쟁/학살/납치의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하여” 발빠르게 취소를 결정한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의 결단 또한 환영합니다.

다만, 상영취소를 전한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이하 프라이드영화제)의 입장문에서 몇 가지 되짚고자 하는 지점이 있었습니다.

BDS(Boycott·Divestment·Sanctions;보이콧·투자철회·제재)는 이스라엘의 압제를 반대하고 압박하기 위해 국제적으로 조직된 운동입니다. 이는 단순히 이스라엘 국적을 가진 개인의 모든 생산물을 보이콧하는 것이 아닙니다. BDS는 개인을 타깃으로 하지 않습니다. 70년이 넘게 지속되고 있는 팔레스타인 점령과 학살에 공모하고 있는 정부/학술/문화예술 기관, 기업 등에 압박을 가하여 그 공모를 끊어내게 하는 것이 BDS운동의 전략입니다. “단순히 제작국가가 이스라엘이라는 이유만으로 작품의 맥락과 연출의도와 관계없이 모든 작품을 보이콧”한다는 것은 BDS에 대한 큰 오해이며, 이스라엘 정부와 시오니즘 재단 등이 주로 내세우는 BDS에 대한 비난 논리이기도 합니다.

상영이 취소된 세 작품의 상영이 부적절했던 이유는, 단순히 작품 제작자의 국적이 이스라엘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리바이브드>는 NFCT(the New Fund for Cinema and Television)의 제작 지원을 받은 작품으로, 이 재단은 이스라엘 문화부의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문화부는 적극적인 문화워싱으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을 정당화하는 전략을 애용하는 국가기관입니다.

<모어 댄 프렌즈>는 NFCT와 GMFF(The Gesher Multicultural Film Fund)의 제작 지원을 받은 작품으로, GMFF 역시 이스라엘 문화부의 지원을 받는 재단이며, 이스라엘의 영화법에 규정된 ‘이스라엘 영화’만 제작 지원이 가능함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영화’에 해당하기 위한 조건 중에는 감독, 각본가, 촬영감독 등 주요 제작진은 이스라엘 시민이어야 하며, 영화의 제작자 역시 이스라엘 시민이거나 이스라엘에 등록된 법인이어야 함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GMFF는 2016년 서울인권영화제가 영화 <Third Person>을 상영 취소하게 한 주요한 근거이기도 합니다. 당시 PACBI(Palestinian Campaign for the Academic and Cultural Boycott of Israel·이스라엘 학술·문화 보이콧을 위한 팔레스타인 캠페인)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조사한 바로, GMFF는 “유대주의 비전” 아래 이스라엘을 “유대인 국가이자 민주 국가”로 홍보한다는 사업 목표를 홈페이지에 명시할 정도로 비유대계 사람들에 대한 차별 노선을 당당히 밝히는 기관이었으며, 이스라엘 군(IDF)에 장교 훈련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기도 했습니다.

<모어 댄 프렌즈>와 <씨 유 라운드 블락>의 배급사인 고투필름즈(Go2Films)는 2016년 서울인권영화제의 <Third Person> 상영 취소 당시 해당 작품의 배급사이기도 했습니다. 당시 고투필름즈는 서울인권영화제에 수 차례 이메일을 보내며 “팔레스타인이 여성, 퀴어, 민주주의를 어떻게 다루는지 아느냐”고 물었고, 팔레스타인에 연대하는 것은 퀴어나 여성 인권에 반하는 행위라고 적기도 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점령을 정당화하는, 한국인에게도 아주 익숙한 식민주의 논리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 정부는 팔레스타인 점령과 학살을 정당화하기 위해 ‘성소수자 인권을 존중하는 유일한 중동 국가’라는 이미지를 내세우고, 영상 미디어를 비롯한 문화 매체를 통해 ‘문화 다양성을 장려하는 민주 국가’라는 이미지를 퍼트립니다. 이는 전형적인 핑크워싱이자 문화워싱 전략이며,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들을 점령하고 차별하는 지점들을 흐리게 합니다. 이스라엘 사회가 설사 팔레스타인 사회보다 성소수자와 여성의 권리를 중시하고 그와 관련해 더 좋은 영화를 배출한다고 하더라도 점령국의 위치에 있는 이스라엘은 피점령지인 팔레스타인 내부의 인권 실태를 비판할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한 비판 시도는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사회와 정치 현실을 스스로 논쟁하고 바꿔나갈 수 있는 팔레스타인인들의 자기결정권을 박탈한 현실을 재차 정당화하는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8년 전 서울인권영화제는 <Third Person>의 상영 취소를 결정한 뒤 배급사, 제작사, 감독 등으로부터 이 결정이 반유대주의적이며 표현의 자유를 박탈하는 결정이라고 맹비난을 받았습니다.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은 BDS에 대해 다시 이야기하자며 수 차례 만남을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경험이 있기에 이번 프라이드영화제의 결단이 무척 용기 있는 결정임을 알고 응원하는 바입니다. 지난 서울인권영화제의 경험에 비추어 프라이드영화제 역시 이 결정에 따른 크고 작은 풍파를 겪게 될 것이 염려되기도 하지만, 팔레스타인과 퀴어 모두의 해방을 꿈꾸며 싸우는 동료들이 있음을 꼭 기억해주시길 바랍니다. 서울인권영화제 또한 그 동료가 될 것을 약속하면서, 앞으로도 치열한 고민과 실천을 이어가며 다양한 퀴어들의 삶이 담긴 영화를 소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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