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 이야기: 기억의 방법

소식

* [친구들 이야기]는 급조된(급조는 언제나 즐겁죠) 신설 꼭지입니다. 서울인권영화제의 후원활동가, 서울인권영화제 활동가의 친구, 동료 등 다양한 이의 이야기를 기회가 될 때마다 실어보려 합니다. 이번 글은 심지의 친구이자 후원활동가인 박현 님께서 보내주셨습니다.

 

기억의 방법 – <미싱타는 여자들>

미싱타는 여자들 포스터
그림. 영화 미싱타는 여자들 포스터. 세 여성 노동자의 얼굴 그림과 타이틀.

풀밭이 펼쳐진 탁 트인 언덕. 왈츠 음악이 울려 퍼지고, 꼭대기에 나란히 놓인 세 개의 미싱기를 향해 세 명의 중년 여성이 걸어간다. 마치 소꿉친구 셋이 모인 것마냥 웃음이 끊이지 않는 그들. 언덕 위에 미싱기가 덩그러니 놓여 있는 낯선 풍경을 재미있어 하며 한참 농담을 주고 받은 후에야 자리를 잡고 앉는다. 하지만 왈츠 음악 사이로 드르르륵, 드르르륵, 망설임 없는 미싱 소리가 울려 퍼지는 순간, 그들이 얼마나 이 일에 이골이 나 있는지 알 수 있다. “이렇게 좀 쾌적한 데서 일하면 일도 저절로 될 것 같지 않아?” 실없는 말을 주고 받으며 웃는 동안, 꽃무늬 천 위에는 세 여성의 이름이 능숙하게 박음질 된다. 이숙희, 신순애, 임미경. 코스모스 핀 쾌적한 언덕과는 정반대의 숨막히는 공간에서 하루종일 ‘미싱을 타던’ 세 여성. 그들은 전태일이 사망했을 즈음 평화시장에서 미싱 일을 시작한 또다른 노동자들이었다. 청계피복노동조합의 조합원으로 활동하다가 일명 ‘9.9 사건’이라 불리는 투쟁의 주역이 되어 수감생활을 한 장본인들이기도 하다. <미싱타는 여자들>은 그들의 70년대에 대한 이야기이다.

 

영화는 계속해서 당시 평화시장 여공들의 모습을 담은 빛바랜 사진들을 보여준다. 마치 끊임없이 되새겨주려는 듯이. 처음 ‘시다’로 일을 시작하던 당시의 사진, 눈을 반짝이며 노동교실에 앉아 있던 모습, 노조 친구들과 야외 나들이를 즐기는 풍경… 한 장 한 장 스쳐가는 사진들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자연히 머릿속이 한 가지 생각으로 가득 차고 만다. ‘너무 어리다.’ 그들은 정말이지, 너무나도, 어렸다. ‘여성’이라는 호칭조차 어색할 정도로, 사진 속의 모습들은 아무리 봐도 그저 한창 뛰어놀고 학교에 다니고 사랑 받아야 할 어린이들이다. ‘여자는 공부를 하면 안 된다’는 부모님의 고집에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중학교 대신 평화시장으로 향했다는 임미경 노동자의 이야기를 단지 말로만 전해 듣는 것과, 아직 교복도 어울리지 않을 것만 같은 그 앳된 얼굴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것은 무게 자체가 다른 일이다. 일어서면 머리가 닿을 정도로 좁은 공간에서 하루종일 무릎을 꿇고 일하던 기억에 대한 증언이 사진 속의 얼굴들과 겹쳐지는 순간, 잠시 심장이 내려앉는 것이 느껴진다.

 

그렇게 탄식을 하고 있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어떤 의문이 떠오를지도 모른다. 저 아이들이 뭘 알고 했을까, 하는 편리한 의문 말이다. 노동운동에 가담한다는 것이 정말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었을까, 단지 학교에 가고 싶어 노동교실에 나갔다가 뜻하지 않게 싸움에 휩쓸려버린 건 아닐까, 하는. “데모가 뭔지는 아냐”고 묻던 당시의 경찰들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의문들. 하지만 영화는 곧 그런 의문이 얼마나 공허한지 되새겨준다. 이제는 중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열네 살, 스무 살의 마음으로 돌아가 기억을 찬찬히 되짚는 여성들의 인터뷰를 좇아가다 보면, 금세 느낄 수 있다. 그들이 누구보다도 명확히 알고 있었음을. 자신들의 권리가 무엇이며, 그것이 어떻게 짓밟혔는지. 무엇이 부당하고 무엇이 부조리했는지. 무엇을 위해, 무엇을 걸고, 싸워야 했는지. 그래서 그들은 1977년 재판장의 판사 앞에서도, 2018년의 카메라 앞에서도, 자신들이 했던 투쟁의 핵심을 정확히 짚어 냈다. 노조가 그들을 ‘의식화’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오만에 가깝다. 40년이 지난 지금도 문득 문득 치를 떨 정도로 억울했던 생생한 경험들이 이미 그들의 ‘의식화’였고, 노동교실은 단지 새로운 언어와 희망을 알려줬을 뿐이었다. 

 

희망. 당시의 마음에 대해 이야기하며 여성 노동자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이 희망이다. 근로기준법의 존재에 대해 알았을 때 느꼈던 희망. 새로운 세상이 올 수도 있다는 희망. 우리도 인간답게 살 수도 있구나, 하는 희망. 그러나 그 ‘빨갱이년들’에게 사주를 한 간첩이 누구인지 물으며 다그치고 때리던 사람들, 아니 그런 그들을 실제로 ‘사주’한 사람들은, 아마 상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세상의 어떤 이들은 정말로 아무런 꿍꿍이도 없이, 누구의 사주도 받지 않은 채, 권력을 탐하지도 않고, 세계 재패를 꿈꾸지도 않고, 그저 자신과 동료들이 인간답게 살기를 바라는 희망만으로 목숨을 걸고 싸우기도 한다는 것을 말이다. 세상에는 그런 동기를 진심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이 존재한다. 특히 권력의 자리에는 더더욱 말이다. 회피하지 않고 마주해야 할 사실이다.

 

사람마다 영화를 본 후 집으로 가져가는 생각은 모두 다를 것이고, 거기에 정답은 없다. 그렇지만 <미싱타는 여자들>이 단순히 지금과는 다른 어떤 ‘야만의 시대’에 격렬했던 청춘에 대한 회고로 읽히는 것에서 끝나지만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이 여성들의 역사를 기록하고 기억한다는 것, 그것이 정말 어떤 의미인지를 생각해 본다. 2019년에 11만명에 가까운 노동자가 산재 피해를 입었다. 2020년에는 산재로 사망한 노동자 수가 코로나19 사망자 수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국은 여전히 OECD 국가 중 근로 시간 2위를 달리는 와중에, 대선을 앞둔 유력 대통령 후보는 앞장서서 최저임금 폐지를, 주 52시간 근무제 철폐를 외친다. 희망을 짓밟으려는 손길들은 언제나 존재한다. 그러니 희망을 믿는 이들이 계속해서 싸우는 수밖에는 없는 것이다. 신순애 노동자가 코트 한켠에 노란 세월호 뱃지를 달고 인터뷰에 참여한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했던 투쟁이 수포로 돌아가지 않도록 애쓰는 것이야말로 진정 그들을 기억하는 일이 아닐까.

 

<미싱타는 여자들> 속 신관용 노동자의 말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많은 싸움을 이어 갔던 여성 노동자들 모두가 바로 제2의 전태일이었다. 동시에 그들은 다시는 전태일 같은 사람이 나오지 않는 사회가 오기를 누구보다 간절히 바란 사람들이기도 했다. 그 바람을 잊지 않고 기억하며 이어 가는 방법. 영화의 마지막에 함께 모여 합창하는 여성들의 노래가 마치 그 방법을 알려주는 듯하다. ‘흔들리지 흔들리지 않게 / 와서 모여 함께 하나가 되자 / 와서 모여 함께 하나가 되자 / 물가에 심어진 나무같이 / 흔들리지 않게’

 

– 박현(프리랜서 노동자 겸 영화학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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